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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닌 대충 조금 수가 잡는 말리는 괴롭다는2024년까지 국내 재계를 지배한 단어는 단연 ‘ESG(환경·사회·지배구조)’였다. 탄소중립, 친환경 투자, 지배구조 개선을 강조하는 풍토가 등장하자 너도나도 ‘ESG 경영’을 표방했다. 최근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ESG 열풍이 한풀 꺾인 가운데 ‘산업재해’라는 새로운 리스크가 생겨났다. 이재명정부 들어 산재 발생 시 영업정지 검토, 과징금 대폭 부과 등의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이제 산재 사망자가 발생한 기업은 생존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산재가 기업 명운을 좌지우지하는 문제로 커지면서, 재계에서는 ESG 대신 ESH(환경·안전·보건)가 더 큰 화두로 떠올랐다. 위험도가 높은 제조업, 건설업 등 업종을 중심으로 작업장 안전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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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재계서 산업 안전을 중점적으로 책임지는 ESH가 화두로 떠올랐다. 사진은 9월 4일 HD현대삼호 작업장 점검에 직접 나선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 정 수석부회장은 이날 “안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라며, “회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임직원의 생명을 최우선에 두겠다”고 강조했다. (HD현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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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근절 외치는 정부에

20년 전 개념 다시 소환
ESH는 Environment(환경), Safety(안전), Health(보건)의 줄임말이다. 쉽게 말해 회사 작업장 내에서 근로자의 건강과 생명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경영 사협회 정책을 말한다. 사실 ESH가 완전히 새롭게 등장한 개념은 아니다. 20여년 전인 2000년대에 본격 등장한 단어다. 당시는 국내서 ‘산재 사망’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던 시기다. 2008년 국내 사망사고만인율(근로자 1만명당 산재 사망자 비율)은 1.56으로 같은 해 미국(0.38), 일본(0.23), 영국(0.07) 등 선진국보다 4~20배가량 높 대출금상환방식 았다. 선진국 대비 지나치게 잦은 산재를 줄이자는 목소리가 커지자, ‘ESH’ 경영이 본격적으로 힘을 받기 시작했다.
한창 재계를 몰아치던 ESH 경영은 2010년대 후반기 들어 관심사에서 밀려났다. 세계적인 투자 회사 블랙록을 비롯한 대형 투자사들이 사회적 책임과 지배구조 개선을 중요시하는 ‘ESG’를 들고 나오면서다. 투자 유치가 시급 주유소 했던 기업들은 ESH 대신 ESG를 전면으로 내세웠다. 같은 기간 산재사고가 감소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2023년 사망사고만인율은 0.39로 20년 전 대비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대다수 기업은 어느 정도 해결된 안전 문제보다는, 당장 투자자가 요구하는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개선 문제에 관심을 더 기울였다.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2022년부터다. CEO에게 산재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법이 시행됐다. 제대로 된 안전 제도를 마련하지 못하면 최고경영자가 징역을 살 수 있다는 공포가 재계를 덮쳤다. 안전 문제는 단순한 인사·노무 리스크를 넘어 CEO 리스크로 비화했다. 기업 경영진 사이에서 ‘안전 확보’에 대한 관심이 급등했다.
2025년 이재명정부의 집권은 ESH 부활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산재 근절을 천명한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 아래 노동당국은 고강도 규제인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도입했다. 해당 정책 시행으로 사망사고가 지속적으로 빈발하는 건설사는 아예 등록이 말소된다. 또 연간 3명 이상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은 영업이익 5% 이내의 과징금을 내야 한다. 산업재해가 CEO의 법적 처벌 수준을 넘어, 기업의 명운을 좌지우지하는 위협으로 떠오른 것이다.
국내 처벌이 강화되는 가운데, 해외 정부의 한국 기업의 산업재해를 바라보는 시선도 심상찮다. 국내 기업의 주요 수출 지역 중 하나인 유럽의 경우 기업에 요구하는 인권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근로자의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다고 분류된 기업은 유럽 시장에서 불이익을 받을 확률이 커졌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미 안전 기준이 높은 유럽이 시장에 참여하는 기업에 대해 높은 인권 기준을 들이밀고 있다. 국내 기업이 ESH에 신경을 더 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국내·외 정부의 ‘엄포’만이 기업의 ESH 경영을 이끌어낸 것은 아니다. 산재를 바라보는 사회 시선이 바뀐 점도 한몫했다. 과거에는 ‘어쩔 수 없는 사고’로 봤다면, 이제는 기업이 당연히 막아야 하는 재난이 됐다. 산재가 빈발하는 기업은 평판 추락과 과징금, 그리고 근로자 생산성 감소라는 ‘치명타’를 감수해야 한다.
일례로 2022~2025년 동안 공장에서 산재 사망자가 6명에 달한 SPC는 올해, 기업 평판 추락과 함께 거센 불매운동에 시달렸다. 소비자들이 SPC가 제조한 빵에 큰 거부감을 내비치면서 크보빵과 같은 인기 협업 제품 생산도 중단해야만 했다. 불매운동과 사고공장 생산 중단 여파로 계열사 매출은 줄줄이 하락했다. 그룹 핵심 회사인 SPC삼립은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67.5% 하락하는 등 큰 어려움을 겪었다.
매출 감소만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 빈발은 인재의 기업 지원 기피, 근로자 근무 의욕 저하로 인한 생산성 저하로 직결된다.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산업재해가 제조업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 재해율이 1%포인트 증가하면 노동생산성이 약 383만원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노동생산성이 떨어졌다. 50명 미만 기업에서 재해율 1% 증가는 노동생산성을 약 3138만원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50~100명 미만 기업에는 약 325만원 감소시키는 것으로 추정됐다.




단순 이념이나 가치가 아니다

기업들 ESH 경영에 사활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은 ESH 경영에 전력을 기울이는 분위기다. 특히 작업장 위험도가 현저히 높은 건설업, 조선업, 제조업 등 기업은 연일 안전·보건 관련 정책을 쏟아내며 ESH 경영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잦은 사망사고로 비상이 걸린 건설업은 아예 업계 전체가 ESH 경영에 사활을 걸고 있다. 현재 건설업은 20대 건설사의 최고경영자, 최고안전책임자(CSO)가 2~3주에 한 번씩 당국과 대담을 가질 정도로 ‘특별 관리 대상’이다. 사망사고가 거의 없어 ‘안전 모범생’이라 불린 삼성물산도 8월 건설현장 안전관리 강화에 돌입할 만큼 전 업계가 절박한 형국이다. 현대건설, GS건설 등 다른 대형 건설사들도 자사와 협력사 특별 안전 점검에 나섰다. 건설 업계 관계자는 “ESG가 지속가능경영을 추구하는 일종의 캠페인 성격의 개념이라면, ESH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안전·보건 체계를 갖추지 못한다면 공포감에 경영 기조가 ‘안전 관리’에 집중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사망사고가 잦은 조선업도 ESH를 전면으로 내세운다. 9월 4일 각 사 대표이사 주관으로 전 계열사가 일제히 현장점검을 실시한 HD현대가 대표적인 예다. 이날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도 HD현대삼호 조선소를 찾았다. 정 수석부회장은 주요 생산 설비와 고위험 작업 현장을 직접 점검했다. 오너 일가가 현장을 방문해 안전관리 실태를 점검한 것은 이례적이다.
작업장에 사고 발생 확률이 높은 제조업체들은 정부 기조에 맞춰 ESH에 힘을 주는 분위기다. 현대차·기아는 올해 협력사 안전 세미나를 대거 확대한다. 현대차·기아는 10월 15일부터 11월 초까지 전국 5개 권역에서 협력사 안전 세미나를 연다. 안산, 청주, 광주, 대구, 경주 등지에서 총 16차수에 걸쳐 진행한다. 해당 행사는 1·2차 협력사 경영진과 안전 담당자가 참여하도록 했다. 조인선 법무법인 YK ESH TF장은 “ESH 이슈는 단순한 이념이나 가치 문제를 넘어섰다. 기업의 비용과 수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사안으로 자리 잡았다.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자문을 받으며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9호·추석합본호 (2025.10.01~10.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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