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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어라유빛 작성일26-02-21 17:48 조회3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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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 덩굴 속 모습을 숨긴 옛 공간사옥(현재 아라리오뮤지엄)의 구사옥과 유리로 만든 신사옥. /사진=아라리오뮤지엄 제공
오스만튀르크 시절엔 '현자들의 학교', 17세기 영국에선 1페니 내고 논쟁적 대화에 참여하는 '페니대학'이라 불렸습니다. '커피'를 대전제로 사람들이 모이는 유형의 공간, 우리는 '카페'라 합니다. 커피를 마시고 공간을 누리는 '끽(喫)'의 장소에서 이야기를 만끽(滿喫)합니다. 주말, 그 공간에서 '건축' 한 잔 어떠신가요.
[파이낸셜뉴스 사이다쿨 ] 2013년 박찬욱 영화감독,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사물놀이 명인 김덕수 등 문화·예술계 인사 110여 명이 성명을 발표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건물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이 건물을 "부동산이 아니라 문화"라고 외쳤다.
문화가 된 이 건축물, 국내 최고의 현대건축물로 꼽히는 '공간사옥'이었다.
바다이야기게임장
모두가 지켜낸 공간
한국의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수근은 1971년 문화가 된 공간사옥을 지었다. 그러다 건설 경기 악화 등으로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공간건축)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경매에 붙여졌다.
문화·예술 릴게임갓 계 인사들은 공간사옥을 지키려고 나섰다. 국가도 국가등록문화유산 지정을 추진했다. 결국 공간사옥은 아라리오에 매각됐지만, 공간건축은 사옥을 훼손하지 않고 '김수근 작업실'을 보존해 달라는 매각 조건을 걸었다.
덕분에 김수근이 건축한 넝쿨 속 구사옥, 공간건축 2대 대표건축가 고(故) 장세양이 증축한 유리 신사옥, 이상림 현 대표건축가가 황금성사이트 증·개축한 ‘ㄷ’자형 한옥이 남을 수 있게 됐다. 2014년 2월 구사옥은 제586호 등록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됐다.
주인이 바뀌고 아라리오뮤지엄이 된 공간사옥은 이달 보수공사에 들어간다. 최소 6개월은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어 서둘러 찾기로 했다. 그전에 그곳을 기억하는 이들의 이야기부터 들었다.
릴게임손오공
김수근이 건축철학을 정립하며 만든 대표적 건축물이 지금은 아라리오뮤지엄이 된 공간사옥의 구사옥 구관이다. 원형 계단(오른쪽)과 삼각형 계단은 이 공간의 독특한 구조 중 하나로 꼽힌다. /사진=서윤경 기자·김수근문화재단
프랑스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공간건축에서 일한 한양대 정인하 건축학과 교수는 "김수근은 시대적 상황 때문에 외부의 시선에 맞는 건축을 했다. 이후 예술가, 고 이어령 교수 등 인문학자들과 작업하며 자신만의 건축 철학을 정립했는데 대표적인 건축물이 공간사옥"이라고 설명했다.
공간사옥의 매각을 지켜본 이상림 대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두 사람은 구사옥에서 봐야 할 것도 짚어줬다. 시차를 두고 세워진 구사옥 구관·신관의 차이,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계단과 통로다. 사람의 체격을 기준으로 설계하는 '휴먼스케일(Human Scale)'을 경험해 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정 교수는 "크지 않은 건물 안에 다양한 기능을 넣었다. 그 기능을 분리하고 연결하는데 통로와 계단을 이용했다"며 "1년간 일하며 지루할 틈이 없었던 이유"라고 떠올렸다.
단국대 이범재 명예교수는 공간사옥의 길라잡이를 해기 위해 어려운 걸음을 기꺼이 해 줬다. 그는 1969년부터 82년까지 김수근을 사사하며 공간건축에서 설계실장, 연구실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학생을 가르치며 공연장, 박물관 등 200여 개 작품을 설계했다.
'공간'을 들여다 보다
김수근이 건축철학을 정립하며 만든 대표적 건축물이 지금은 아라리오뮤지엄이 된 공간사옥이다. 김수근이 설계한 구사옥의 구관과 신관은 경사로에 배치돼 복잡다단한 구조를 보여준다. 건물의 정문은 구관 측면 나무계단 위 아치형태로 있었다. /사진=서윤경 기자·김수근문화재단
구사옥 좌측면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면서 이 명예교수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러더니 구관 측면 나무 계단을 가리키며 '정문이 어딘지 아느냐'는 질문을 했다. '길과 맞닿은 정면'이라는 뻔한 답이 나올 걸 예상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저 계단 위 블록유리로 막힌 곳이 원래 정문"이라고 답을 알려줬다.
좀 더 올라가니 정 교수와 이 대표가 말한 신·구관의 경계가 나왔다.
이 명예교수는 "신관의 측면은 구관보다 약간 들어가 있어 격차가 난다. 여기서 봐야 할 건 또 있다"고 했다.
바로 공간사옥의 특징 중 하나인 '벽돌'이었다.
이 명예교수는 "한옥과의 조화를 고민하며 기왓장 재료로 기와 만들듯 벽돌을 만들었다. 물에 약한 게 단점이라 실내엔 적벽돌을 썼다"면서 "신관과 구관은 같은 벽돌을 썼지만, 다른 게 있다. 신관의 벽돌 높이가 더 낮아 촘촘해 보인다"고 알려줬다.
설명을 듣는 순간 하나로 보이던 건물은 1971년 건축된 구관, 1977년 지어진 신관으로 구분됐다.
넝쿨 아래 구사옥의 공간으로 들어가니 색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경사로에 맞춰 반 층씩 높인 스킵 플로 방식에 신·구관의 크고 작은방들이 복잡다단하게 연결된 공간, 같은 곳을 봐도 위치에 따라 달리 보이는 배치 덕에 방심하면 방향을 잃을 듯 했다.
아라리오뮤지엄 장연우 큐레이터가 "층과 공간의 개념이 정의되지 않아 신입 직원은 하루에 두 번, 세 번씩 돌아보라고 한다. 직원들 미팅 때도 몇 층보다 '무슨 작품 앞'에서 만나자고 한다"고 말하자 이 명예교수가 "우리도 행정실, 작업실 등 공간 이름으로 만날 곳을 정했다"고 거들었다.
공간사옥에서 근무한 건축가들은 신관 2층부터 4층으로 연결된 확 트인 공간을 '마당'이라고 부른다. /사진=서윤경 기자
여기에 통로와 계단은 골목길처럼 좁고 층고는 낮아도 압도적이지 않아 편안하다. 김수근의 휴먼스케일이다.
한옥 요소도 곳곳에 있다. 신관의 옛 리셉션룸에 있는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들 중 작은 화물차와 텔레비전을 결합한 '노매드'(1994)는 파여진 바닥 아래에 있다. 이 명예교수는 '파여진 높이'를 "대감마님이 방문을 열고 문지방에 팔을 걸칠 때 높이"라고 풀이했다.
계단을 오르니 이 명예교수도, 정 교수도, 이 대표도 '마당'이라 부르는 확 트인 공간이 나왔다. 신관 2층 마당은 3~4층이 내려다보며 둘러싸고 있다. 꼭대기까지 뻥 뚫린 천정의 천창에선 자연광이 들어온다.
단국대 이범재 명예교수가 공간사옥의 상징이라며 김수근의 작업실 한 켠에 마련된 하얀 원통형 공간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서윤경 기자
구관 김수근의 작업실에서 의미있는 공간과 마주했다. 하얀 원통형 작은 공간이다. 이 명예교수는 "어머니의 자궁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사옥의 상징같은 곳"이라며 "건축은 보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며 본질을 찾던 때 김수근의 휴식 공간이었다"라고 강조했다.
숨겨진 재미난 곳도 있다. 김수근이 처음 도입한 베이(bay)윈도는 창문의 3개면 중 양 측면을 60도로 꺾어 만(灣)처럼 튀어나왔다. 좁고 가파른 원형 계단의 끝 층엔 서까래 드러난 천정에 대청마루를 설치한 김수근의 사랑방이 있다. 삼각형 계단도 놓쳐선 안 된다.
공간, 다양성을 담다
구사옥의 베이(bay)윈도 너머로 1996년 공간건축의 2대 대표건축가 장세양의 신사옥이 보인다. 김수근의 구사옥을 가리지 않으면서 창덕궁의 경치까지 볼 수 있도록 전면을 유리로 마감했다. /사진=아라리오뮤지엄
아라리오뮤지엄은 구사옥과 함께 눈여겨봐야 할 건축물이 또 있다. 1996년 당시 장세양 건축가는 구사옥이 과밀해지면서 전면을 유리로 마감한 신사옥을 지었다. 창덕궁과 김수근의 기념비적인 건축물, 구사옥 사이 개방성을 강조하기 위해 유리를 썼다고 했다.
이 대표는 구사옥과 신사옥 사이에 한옥 건물을 지었다. 현재 벽돌건물은 미술관, 유리건물은 레스토랑, 한옥은 카페로 쓰고 있다.
구사옥은 건축사적 의미 외에 또 다른 의미도 품고 있다.
이 명예교수는 "돈도 없는 말 그대로 '거지들'이었던 예술가들이 자기 작품을 보여주는 공간이 됐다"고 말했다.
구관 지하 전시장엔 '물방울 화가' 김창열, 한국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 등이 작품을 걸었다. 신관 지하 공연장인 '사랑공간'에선 백남준과 창작 가야금 음악의 창시자 황병기, 대한민국 1인 창무극의 선구자 공옥진, '신을 부르는 소리'라는 극찬을 받은 김덕수 사물놀이가 공연했다. 그렇게 1970, 80년대 한국현대예술의 구심점이 됐다.
아라리오뮤지엄이 굿즈를 파는 곳도 당시 예술가들에겐 특별했다. 이 명예교수는 "원래 카페였다. 예술가들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고 카페 앞에서 바자를 열어 돈을 벌었다"고 알려줬다.
그 카페, 한옥에 담다
공간건축의 구사옥과 신사옥 사이에 자리한 한옥은 현 공간건축사사무소 대표인 이상림 건축가가 지어 카페 프릳츠가 입점해 있다. 과거 공간사옥을 둘러싼 한옥(왼쪽) 중 한 채를 해체한 뒤 자재 대부분을 재활용하면서 공간을 조성했다. /사진=김수근문화재단·공간건축사사무소·서윤경 기자
아리리오뮤지엄 한옥 평면도. /사진=공간건축사사무소
이제 커피를 마시던 공간은 구사옥 앞 18평 공간의 한옥에 마련됐다.
이 대표는 "공간사옥의 옛 사진을 보면 한옥에 둘러싸인게 보인다. 방 두 개의 이 작은 한옥도 공간건축 직원들이 차를 마시며 쉬던 곳"이라며 "한옥은 해체 후 자재를 재사용할 수 있는데 이 건물도 옛 한옥의 자재 70%를 다시 쓰며 층고를 높이고 깨진 기와를 맞췄다"고 밝혔다.
한옥을 퉁해 건축과 공간에 대한 이해를 구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한옥은 사랑채에 안채, 마당에 마루처럼 공간을 나누며 조화를 이룬다. 한국 사람들은 그런 공간을 존중했다"며 "지금은 비슷한 형태의 아파트에 살며 감성이 사라졌는데 공간에 대한 존중이 생겨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한옥에 자리한 카페 프릳츠는 '그 공간'을 존중하며 커피를 내놓고 있다. 노하우도 충분하다.
공간건축의 구사옥과 신사옥 사이에 자리한 한옥엔 '레트로' 감성을 담은 카페 프릳츠가 자리하고 있다. 소반의 상판에서 착안한 테이블, 외부에서 바라본 카페 프릳츠, 이 곳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커피원두 '아라리오 블랜드'와 한옥 건너편 신사옥 1층의 커피바(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사진=서윤경 기자·카페 프릳츠
2014년 마포 가든호텔 뒷길에서 로스터, 제빵사, 디자이너 등 전문가들이 함께 시작한 이 브랜드는 '레트로'라는 콘셉트에 맞춰 낡은 것을 재해석한 감성으로 2030세대에 큰 호응을 얻었다.
서솔 프릳츠 브랜드매니저는 "아라리오에서 입점 제안이 온 건 영광이다. 장소 자체가 의미있어 잘 꾸려 나가고 싶었다"면서 "무엇보다 '편하게', '즐겁게'를 모토로 '한국적인 것'을 추구하는 우리 브랜드와 맞았다"고 말했다.
소반을 떠올리게 하는 테이블 상판이나 '아라리오 블랜드' 원두는 공간에 대한 존중이 느껴진다. 덕분에 카페를 채운 사람들은 연령부터 성별, 국적까지 다양하다.
"건축의 본질은 공간에 있다는 걸 깨닫고 만든 사람이 김수근"이라는 이 명예교수의 말처럼 아라리오뮤지엄, 카페 프릳츠는 문화를 품고 커피향을 풍기며 건축의 본질을 말하는 듯 했다.
그래서 다음에 만날 카페도 문화와 커피가 있는 공간, 오스트리아 빈의 '카페 뮤지엄'이다.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뮤지엄과 카페 프릳츠 개요. /그림=서윤경 기자
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
오스만튀르크 시절엔 '현자들의 학교', 17세기 영국에선 1페니 내고 논쟁적 대화에 참여하는 '페니대학'이라 불렸습니다. '커피'를 대전제로 사람들이 모이는 유형의 공간, 우리는 '카페'라 합니다. 커피를 마시고 공간을 누리는 '끽(喫)'의 장소에서 이야기를 만끽(滿喫)합니다. 주말, 그 공간에서 '건축' 한 잔 어떠신가요.
[파이낸셜뉴스 사이다쿨 ] 2013년 박찬욱 영화감독,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사물놀이 명인 김덕수 등 문화·예술계 인사 110여 명이 성명을 발표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건물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이 건물을 "부동산이 아니라 문화"라고 외쳤다.
문화가 된 이 건축물, 국내 최고의 현대건축물로 꼽히는 '공간사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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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지켜낸 공간
한국의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수근은 1971년 문화가 된 공간사옥을 지었다. 그러다 건설 경기 악화 등으로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공간건축)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경매에 붙여졌다.
문화·예술 릴게임갓 계 인사들은 공간사옥을 지키려고 나섰다. 국가도 국가등록문화유산 지정을 추진했다. 결국 공간사옥은 아라리오에 매각됐지만, 공간건축은 사옥을 훼손하지 않고 '김수근 작업실'을 보존해 달라는 매각 조건을 걸었다.
덕분에 김수근이 건축한 넝쿨 속 구사옥, 공간건축 2대 대표건축가 고(故) 장세양이 증축한 유리 신사옥, 이상림 현 대표건축가가 황금성사이트 증·개축한 ‘ㄷ’자형 한옥이 남을 수 있게 됐다. 2014년 2월 구사옥은 제586호 등록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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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근이 건축철학을 정립하며 만든 대표적 건축물이 지금은 아라리오뮤지엄이 된 공간사옥의 구사옥 구관이다. 원형 계단(오른쪽)과 삼각형 계단은 이 공간의 독특한 구조 중 하나로 꼽힌다. /사진=서윤경 기자·김수근문화재단
프랑스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공간건축에서 일한 한양대 정인하 건축학과 교수는 "김수근은 시대적 상황 때문에 외부의 시선에 맞는 건축을 했다. 이후 예술가, 고 이어령 교수 등 인문학자들과 작업하며 자신만의 건축 철학을 정립했는데 대표적인 건축물이 공간사옥"이라고 설명했다.
공간사옥의 매각을 지켜본 이상림 대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두 사람은 구사옥에서 봐야 할 것도 짚어줬다. 시차를 두고 세워진 구사옥 구관·신관의 차이,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계단과 통로다. 사람의 체격을 기준으로 설계하는 '휴먼스케일(Human Scale)'을 경험해 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정 교수는 "크지 않은 건물 안에 다양한 기능을 넣었다. 그 기능을 분리하고 연결하는데 통로와 계단을 이용했다"며 "1년간 일하며 지루할 틈이 없었던 이유"라고 떠올렸다.
단국대 이범재 명예교수는 공간사옥의 길라잡이를 해기 위해 어려운 걸음을 기꺼이 해 줬다. 그는 1969년부터 82년까지 김수근을 사사하며 공간건축에서 설계실장, 연구실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학생을 가르치며 공연장, 박물관 등 200여 개 작품을 설계했다.
'공간'을 들여다 보다
김수근이 건축철학을 정립하며 만든 대표적 건축물이 지금은 아라리오뮤지엄이 된 공간사옥이다. 김수근이 설계한 구사옥의 구관과 신관은 경사로에 배치돼 복잡다단한 구조를 보여준다. 건물의 정문은 구관 측면 나무계단 위 아치형태로 있었다. /사진=서윤경 기자·김수근문화재단
구사옥 좌측면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면서 이 명예교수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러더니 구관 측면 나무 계단을 가리키며 '정문이 어딘지 아느냐'는 질문을 했다. '길과 맞닿은 정면'이라는 뻔한 답이 나올 걸 예상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저 계단 위 블록유리로 막힌 곳이 원래 정문"이라고 답을 알려줬다.
좀 더 올라가니 정 교수와 이 대표가 말한 신·구관의 경계가 나왔다.
이 명예교수는 "신관의 측면은 구관보다 약간 들어가 있어 격차가 난다. 여기서 봐야 할 건 또 있다"고 했다.
바로 공간사옥의 특징 중 하나인 '벽돌'이었다.
이 명예교수는 "한옥과의 조화를 고민하며 기왓장 재료로 기와 만들듯 벽돌을 만들었다. 물에 약한 게 단점이라 실내엔 적벽돌을 썼다"면서 "신관과 구관은 같은 벽돌을 썼지만, 다른 게 있다. 신관의 벽돌 높이가 더 낮아 촘촘해 보인다"고 알려줬다.
설명을 듣는 순간 하나로 보이던 건물은 1971년 건축된 구관, 1977년 지어진 신관으로 구분됐다.
넝쿨 아래 구사옥의 공간으로 들어가니 색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경사로에 맞춰 반 층씩 높인 스킵 플로 방식에 신·구관의 크고 작은방들이 복잡다단하게 연결된 공간, 같은 곳을 봐도 위치에 따라 달리 보이는 배치 덕에 방심하면 방향을 잃을 듯 했다.
아라리오뮤지엄 장연우 큐레이터가 "층과 공간의 개념이 정의되지 않아 신입 직원은 하루에 두 번, 세 번씩 돌아보라고 한다. 직원들 미팅 때도 몇 층보다 '무슨 작품 앞'에서 만나자고 한다"고 말하자 이 명예교수가 "우리도 행정실, 작업실 등 공간 이름으로 만날 곳을 정했다"고 거들었다.
공간사옥에서 근무한 건축가들은 신관 2층부터 4층으로 연결된 확 트인 공간을 '마당'이라고 부른다. /사진=서윤경 기자
여기에 통로와 계단은 골목길처럼 좁고 층고는 낮아도 압도적이지 않아 편안하다. 김수근의 휴먼스케일이다.
한옥 요소도 곳곳에 있다. 신관의 옛 리셉션룸에 있는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들 중 작은 화물차와 텔레비전을 결합한 '노매드'(1994)는 파여진 바닥 아래에 있다. 이 명예교수는 '파여진 높이'를 "대감마님이 방문을 열고 문지방에 팔을 걸칠 때 높이"라고 풀이했다.
계단을 오르니 이 명예교수도, 정 교수도, 이 대표도 '마당'이라 부르는 확 트인 공간이 나왔다. 신관 2층 마당은 3~4층이 내려다보며 둘러싸고 있다. 꼭대기까지 뻥 뚫린 천정의 천창에선 자연광이 들어온다.
단국대 이범재 명예교수가 공간사옥의 상징이라며 김수근의 작업실 한 켠에 마련된 하얀 원통형 공간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서윤경 기자
구관 김수근의 작업실에서 의미있는 공간과 마주했다. 하얀 원통형 작은 공간이다. 이 명예교수는 "어머니의 자궁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사옥의 상징같은 곳"이라며 "건축은 보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며 본질을 찾던 때 김수근의 휴식 공간이었다"라고 강조했다.
숨겨진 재미난 곳도 있다. 김수근이 처음 도입한 베이(bay)윈도는 창문의 3개면 중 양 측면을 60도로 꺾어 만(灣)처럼 튀어나왔다. 좁고 가파른 원형 계단의 끝 층엔 서까래 드러난 천정에 대청마루를 설치한 김수근의 사랑방이 있다. 삼각형 계단도 놓쳐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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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사옥의 베이(bay)윈도 너머로 1996년 공간건축의 2대 대표건축가 장세양의 신사옥이 보인다. 김수근의 구사옥을 가리지 않으면서 창덕궁의 경치까지 볼 수 있도록 전면을 유리로 마감했다. /사진=아라리오뮤지엄
아라리오뮤지엄은 구사옥과 함께 눈여겨봐야 할 건축물이 또 있다. 1996년 당시 장세양 건축가는 구사옥이 과밀해지면서 전면을 유리로 마감한 신사옥을 지었다. 창덕궁과 김수근의 기념비적인 건축물, 구사옥 사이 개방성을 강조하기 위해 유리를 썼다고 했다.
이 대표는 구사옥과 신사옥 사이에 한옥 건물을 지었다. 현재 벽돌건물은 미술관, 유리건물은 레스토랑, 한옥은 카페로 쓰고 있다.
구사옥은 건축사적 의미 외에 또 다른 의미도 품고 있다.
이 명예교수는 "돈도 없는 말 그대로 '거지들'이었던 예술가들이 자기 작품을 보여주는 공간이 됐다"고 말했다.
구관 지하 전시장엔 '물방울 화가' 김창열, 한국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 등이 작품을 걸었다. 신관 지하 공연장인 '사랑공간'에선 백남준과 창작 가야금 음악의 창시자 황병기, 대한민국 1인 창무극의 선구자 공옥진, '신을 부르는 소리'라는 극찬을 받은 김덕수 사물놀이가 공연했다. 그렇게 1970, 80년대 한국현대예술의 구심점이 됐다.
아라리오뮤지엄이 굿즈를 파는 곳도 당시 예술가들에겐 특별했다. 이 명예교수는 "원래 카페였다. 예술가들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고 카페 앞에서 바자를 열어 돈을 벌었다"고 알려줬다.
그 카페, 한옥에 담다
공간건축의 구사옥과 신사옥 사이에 자리한 한옥은 현 공간건축사사무소 대표인 이상림 건축가가 지어 카페 프릳츠가 입점해 있다. 과거 공간사옥을 둘러싼 한옥(왼쪽) 중 한 채를 해체한 뒤 자재 대부분을 재활용하면서 공간을 조성했다. /사진=김수근문화재단·공간건축사사무소·서윤경 기자
아리리오뮤지엄 한옥 평면도. /사진=공간건축사사무소
이제 커피를 마시던 공간은 구사옥 앞 18평 공간의 한옥에 마련됐다.
이 대표는 "공간사옥의 옛 사진을 보면 한옥에 둘러싸인게 보인다. 방 두 개의 이 작은 한옥도 공간건축 직원들이 차를 마시며 쉬던 곳"이라며 "한옥은 해체 후 자재를 재사용할 수 있는데 이 건물도 옛 한옥의 자재 70%를 다시 쓰며 층고를 높이고 깨진 기와를 맞췄다"고 밝혔다.
한옥을 퉁해 건축과 공간에 대한 이해를 구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한옥은 사랑채에 안채, 마당에 마루처럼 공간을 나누며 조화를 이룬다. 한국 사람들은 그런 공간을 존중했다"며 "지금은 비슷한 형태의 아파트에 살며 감성이 사라졌는데 공간에 대한 존중이 생겨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한옥에 자리한 카페 프릳츠는 '그 공간'을 존중하며 커피를 내놓고 있다. 노하우도 충분하다.
공간건축의 구사옥과 신사옥 사이에 자리한 한옥엔 '레트로' 감성을 담은 카페 프릳츠가 자리하고 있다. 소반의 상판에서 착안한 테이블, 외부에서 바라본 카페 프릳츠, 이 곳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커피원두 '아라리오 블랜드'와 한옥 건너편 신사옥 1층의 커피바(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사진=서윤경 기자·카페 프릳츠
2014년 마포 가든호텔 뒷길에서 로스터, 제빵사, 디자이너 등 전문가들이 함께 시작한 이 브랜드는 '레트로'라는 콘셉트에 맞춰 낡은 것을 재해석한 감성으로 2030세대에 큰 호응을 얻었다.
서솔 프릳츠 브랜드매니저는 "아라리오에서 입점 제안이 온 건 영광이다. 장소 자체가 의미있어 잘 꾸려 나가고 싶었다"면서 "무엇보다 '편하게', '즐겁게'를 모토로 '한국적인 것'을 추구하는 우리 브랜드와 맞았다"고 말했다.
소반을 떠올리게 하는 테이블 상판이나 '아라리오 블랜드' 원두는 공간에 대한 존중이 느껴진다. 덕분에 카페를 채운 사람들은 연령부터 성별, 국적까지 다양하다.
"건축의 본질은 공간에 있다는 걸 깨닫고 만든 사람이 김수근"이라는 이 명예교수의 말처럼 아라리오뮤지엄, 카페 프릳츠는 문화를 품고 커피향을 풍기며 건축의 본질을 말하는 듯 했다.
그래서 다음에 만날 카페도 문화와 커피가 있는 공간, 오스트리아 빈의 '카페 뮤지엄'이다.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뮤지엄과 카페 프릳츠 개요. /그림=서윤경 기자
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


